며칠 전, 인스타툰 작가 귀찮님의 그림을 보았다. 올해 목표가 ‘누구도 청탁하지 않은 일을 마치 아주 큰 돈을 받고 청탁받은 것처럼 해보기’라고 하신 것을 보고 너무나 큰 충격과 영감을 받았다. ’큰 돈‘과 ’청탁‘이라는 단어가 주는 강력함도 있지만, 이 말의 바탕에는 ’누군가의 부탁‘이 전제로 깔려있다. 무슨 일을 할 때, 누가 나에게 부탁했을 때와, 나 스스로의 의지로 했을 때의 차이를 귀찮 작가님도 느꼈던 것이 아닐까.
개인적으로는 지인이 나에게 내 시간을 내거나, 노동이 필요하거나, 어떤 희생을 필요로 하는 일을 도와달라고 할 때, 마치 내 일인 양 해줄 수 있다. 이미 그런 경험도 적지 않다.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나에게 돈을 주어서가 아니라, 그가 처한 어려움에 공감하고, 나의 능력을 알기 때문이다. 이는 곧, 나는 나의 능력치를 알고, 타인의 어려움에 공감할 수 있으며, 내 능력을 그 어려움에 기꺼이 베풀 수 있음을 의미한다. 나는 이러한 이해를 나 스스로에 대한 측면과 타인에 대한 측면, 둘로 나누어 영감을 얻었다.
쉬운 이야기부터 하자면, 타인에게 친절할 수 있음에도 냉소적일 때가 많다는 점이다. 누군가 요청하지 않아도 친절할 수 있는 능력이 누구에게나 있다. 그리고 그 행동은 애써 냉소적으로 대하는 것보다 에너지가 더 필요하다거나 더 힘든 일도 아니다. 오히려 긴장 상태에 놓인 몸을 이끌고 낯선 환경에 놓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더욱 에너지 소모가 큰 일이다. 그래서 우리는 기본적으로 누가 부탁하지 않아도 친절할 수 있으므로, 누군가가 부탁한 것처럼 친절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.
다음으로 스스로에 대한 측면인데, 사람들은 대개 스스로에게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음에도, 남에게서 도움을 받아 해결하려 한다. 가령 누군가가 "ㅇㅇ님 이것 좀 도와주세요." 하면 그것이 아는 일이든 모르는 일이든 나는 찾으면서도 해줄 의향이 있고, 그럴 능력이 있다. 그것을 거절하는 자유도 있겠지만, 어쨌든 관계 형성을 위해서나, 나의 실력을 위해서 그 일쯤은 해줄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. 그런데 나는 왜 나에게 부탁하지 않을까? 마음이 힘들고 어려울 때 나에게 도움을 청해보자. 마치 누군가가 거액의 청탁금을 주고 부탁한 것처럼, 나 스스로에게 나를 잘 돌봐주기를 청하는 마음으로 살아봐야겠다.
벌써부터 내 스스로의 가치가 높아진 느낌이 든다. 나는 나를 바라보며, 나에게 부탁한다.
"조금 더 친절하게 대해주세요. (10억 건네기)"
"조금 더 운동해 주세요.(20억 건네기)"
마치 큰 돈을 받고 행하는 것처럼 정성스럽게 삶을 살아가보는 태도를 가져보려 한다.
'블로그 > 짧은 생각' 카테고리의 다른 글
[잡담] 여전히 공부 뿐이야.. (0) | 2024.09.06 |
---|---|
이유없는 불안은 없다. (0) | 2024.05.09 |
[그레이 단상] 연습에 관하여 (0) | 2024.03.28 |
[회색단상] 허준이 교수의 서울대학교 졸업식 축사 (0) | 2024.02.23 |
짧은 생각을 긴 글로 표현하는 연습 (0) | 2022.12.13 |
댓글